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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약초차 효능·전통

백약이오름, 이름처럼 약초의 보고…향기나는 고사리차 이야기

by access-info 2025. 6. 18.

1. '모든 약이 나는 산' 백약이오름의 진짜 의미

제주 구좌읍 송당리에 자리한 백약이오름은 이름부터 예사롭지 않다. 한자로 ‘百藥’—즉 ‘모든 약초가 나는 곳’이라는 뜻을 지닌 이 오름은 실제로 제주 내에서도 약용 식물 밀도가 가장 높은 오름 중 하나로 꼽힌다. 해발 약 330m의 높이지만 완만한 경사와 습윤한 기후 덕에 쑥, 고사리, 청미래덩굴, 비비추, 도깨비가지, 자주쑥부쟁이 등 다양한 약초들이 자생한다.

특히 이 오름은 곶자왈과 맞닿아 있어 습도 유지와 토양 배수가 동시에 좋은 특이한 생태계를 이룬다. 덕분에 이곳에서 자라는 약초는 향과 효능 모두 강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역 주민들은 예부터 백약이오름 인근에서 봄철 어린 고사리를 채취해 먹고, 일부는 말려 고사리차로 즐기거나 약용으로 사용해왔다. 단순한 산나물의 이미지가 아닌, 몸을 다스리는 자생차로서 고사리가 제주인의 삶 속에 자리 잡아온 것이다.

백약이오름, 이름처럼 약초의 보고…향기나는 고사리차 이야기

2. 봄을 담은 고사리차, 제주의 약이 되는 차

제주 고사리차는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고사리 요리와는 다른 방식으로 즐긴다. 바로 제다(製茶)를 통해 차 형태로 가공해 마시는 것이다. 제주에서 자생하는 고사리는 대부분 '참고사리(Pteridium aquilinum)' 종으로, 이른 봄 새순이 나올 때 그 어린잎만을 채취해야 쓴맛이 없고, 향이 깊다. 특히 백약이오름에서 자라는 고사리는 햇볕보다 이슬과 바람을 머금은 채 자라 향이 유난히 은은하다.

고사리차는 일반적으로 채취 후 살짝 데쳐 아린 맛을 제거한 뒤, 그늘에서 3~5일간 자연건조하여 보관한다. 이후 마실 때는 물 500ml에 고사리 말린 잎 5g 정도를 넣고 중약불에서 10분 정도 끓인다. 물이 진한 갈색을 띠며 한방차 특유의 향이 올라오면 완성이다. 이때 마시는 고사리차는 단순히 나물 맛이 아닌, 구수하고 은근한 풀향, 뿌리차처럼 쌉싸름한 여운이 남는다. 입안에서 느껴지는 이 향은 바로 제주의 봄 자연이 농축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3. 고사리의 재발견, 항산화와 면역력의 비밀

고사리차는 향긋한 음료를 넘어, 실제 과학적 효능으로도 인정받고 있다. 특히 백약이오름 자생 고사리는 일반 고사리보다 플라보노이드, 폴리페놀, 베타카로틴 함량이 높아, 항산화 작용이 강하다. 활성산소를 억제하고 세포 노화를 방지해주는 역할을 한다. 또한, 고사리에 들어 있는 식이섬유와 칼륨은 체내 염분을 배출하고 혈압을 안정화시키는 데도 도움을 준다.

최근 연구에서는 고사리 추출물의 항염 작용과 항암 가능성도 보고되고 있다. 특히 간 해독 효소의 작용을 도와 숙취 해소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데이터가 발표되면서, 간 건강을 위한 자연차 대안으로 고사리차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제주 전통에서 몸이 무거울 때, 속이 더부룩할 때 마셨던 고사리차가 단순한 민간요법이 아닌, 현대 건강 관리에 적용 가능한 차 음료로 재해석되는 시대다.

 

4. 잊혀진 제주 차례음료, 고사리차의 문화적 가치

고사리는 단순한 반찬 재료가 아니었다. 제주 차례상에는 반드시 고사리나 고사리차가 오르던 전통이 있다. 이는 고사리가 부드럽고 길게 뻗은 모습 때문에, 장수를 상징한다는 믿음과 연결된다. 또한 ‘한 해 내내 건강하게 자라라’는 기원적 의미로도 사용되었고, 일부 가정에서는 고사리차를 술 대용으로 올리는 경우도 있었다. 특히 백약이오름에서 채취한 고사리는 '산에서 얻은 귀한 약'이라 하여 따로 말려 보관했다는 전승도 있다.

현대에 와서 고사리차는 점점 사라지는 문화가 되었지만, 최근 들어 로컬푸드·전통차 복원 프로젝트 속에서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백약이오름 인근 마을에서는 고사리차를 활용한 카페 메뉴 개발이나 약초차 클래스 체험도 진행되고 있으며, 이는 단순한 소비를 넘어 제주의 자연·문화·건강을 잇는 새로운 콘텐츠 자산으로 성장 중이다. 한 잔의 차가 사람과 지역을 이어주는 시대, 백약이오름의 고사리차는 그 출발점으로 손색이 없다.